태국의 왕궁- 그랜드팰리스 에메랄드 불상의 역사

특별취재팀 | 기사입력 2015/01/31 [19:39]

태국의 왕궁- 그랜드팰리스 에메랄드 불상의 역사

특별취재팀 | 입력 : 2015/01/31 [19:39]

앞서 살펴 본 것처럼 태국의 왕궁 ‘그랜드팰리스(프라보롬 라차왕)’에는 왕실의 거주, 통치, 행정시설 이외에도 왕실 전용사원이 있다. 왕실 전용사원은 보통의 사찰과는 달리 승려가 거주하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 이 사원의 공식명칭은 “왓 프라 시 라타나 사사다람(Wat Phra Si Rattana Sasadaram)”이며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어진 성스러운 스승의 상을 봉안하고 있는 사원’이라는 뜻이다. “왓 프라 깨오(Wat Phra Kaeo)”라 약칭하며 ‘에메랄드사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사원에는 태국의 수호신으로 여겨지는 불상을 봉안하고 있는데 이름하여 “프라깨오 모라콧”이다. 일년에 세 번 옷을 갈아입는 이 불상은 키가 60센티에 불과한 작은 불상이다. 보통의 불상과 달리 벽옥(jasper)으로 조각된 것인데 ‘에메랄드’ 불상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잘못된 이름이 보편적인 이름으로 굳어진 경우이다. 불상은 얼굴모습 등으로 보아 15세기경 태국 북부 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나, 가부좌로 앉아 명상에 든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 때문에 훨씬 이전시대의 스리랑카 제작설이 제기되기도 한다.
 
다양한 보살을 통한 타력신앙이 특징인 대승불교와는 달리, 자력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상좌부불교가 보편적이던 태국 지역에서 불상에 대한 애착은 매우 강했다. 기록에 따르면 에메랄드 불상은 이미 15세기경부터 신비한 힘을 가진 수호불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정령신앙의 뿌리가 강했던 이 지역에서는 수호불상은 단순한 상징물이 아닌 실제로 신령이 거주하며 마법적인 힘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졌던 것이다.
 
작은 도시국가들이 많았던 이 지역에서 통치자들은 불교의 주요한 후원자들이었고 각자의 나라를 수호하는 불상들을 하나쯤은 보유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를 점령하여 속국으로 삼는 경우, 속국의 수호불상은 가장 중요한 전리품 중 하나였다. 태국에서 에메랄드불상 이외에 수호신급의 또 다른 불상을 꼽는다면 수코타이 왕국으로부터 유래하는 프라싱 불상을 들 수 있다. 이웃국가 라오스에도 유명한 수호신상이 있는데 “프라방(Prabang)” 불상으로서 라오스의 옛 수도인 “루앙프라방”이 이 불상의 이름을 따라 작명된 것이다.
 
비교적 신빙성 있는 자료에 따르면, 1434년 태국 북부의 치앙라이의 한 사원(치앙라이의 왓프라깨오)에서 번개에 맞아 깨진 제디탑 안에서 우연하게 불상이 발견된다. 당초 석고에 덮여 있었던 이 불상은 나중에 벽옥으로 조각된 속살을 드러내고, 곧 영험한 불상으로 소문이 퍼져 나갔다.  소문을 들은 란나타이 왕국의 왕이 1436년 이 불상을 수도인 치앙마이로 옮기고자 했으나, 운반하던 코끼리가 람팡에서 움직이지 않아 그곳의 ‘왓 프라깨오돈타오’라는 절에서 봉안케 되었다. 1468년에 이르러서야 ‘틸로카랏’ 왕이 불상을 수도 치앙마이로 옮겨 ‘왓제디루앙’ 사원의 제디탑 동쪽 벽감에 봉안하였다.
 
이로부터 80년이 지난 1548년에는 태국을 떠나서 라오스로 옮겨지게 된다. 라오스의 왕자로서 치앙마이를 통치하던 전왕의 외손자 ‘세타티랏’왕자가 라오스의 왕위를 잇기 위해 수도 루앙프라방으로 되돌아 가면서 에메랄드 불상도 가지고 간 것이었다. 버마의 위협이 증가함에 따라 그는 1564년 수도를 비엔티안으로 옮겨 ‘왓 프라깨오’라는 사원을 짓고 에메랄드 불상을 이곳에 봉안하였다. 오늘날까지도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는 ‘왓프라깨오’라는 사원이 남아 있다.
 
이 때로부터 약 200년 후 태국의 ‘아유타야’왕국이 버마의 공격으로 멸망하였으나, 아유타야 출신의 ‘딱신’이 버마세력을 몰아내고 ‘톤부리’지역에 새로운 태국 왕조를 수립했다. 1778년에는 ‘딱신’왕의 오른팔인 ‘짜오프라야 차끄리’ 장군이 라오스를 침공하고, ‘에메랄드’불상과 ‘프라방’불상을 전리품으로 가지고 와서 ‘톤부리’왕조의 왕실사원인 ‘왓챙’에 봉안하였다. 이 중 ‘에메랄드’불상은 1782년 반란으로 ‘딱신’이 실각하고 ‘짜오프라야 차끄리’가 새 왕조(‘라타나꼬신’왕조)의 왕이 되면서, 1784년 새 왕실사원인 에메랄드사원으로 옮겨져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치앙라이의 한 제디탑 안에서 석고에 덮힌 채로 우연히 발견된 1434년 이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불상의 형태로 보아 15세기경 그 부근에서 만들어진 불상으로 판단되나, 전설은 우리를 보다 멀리 인도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 불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기원전으로서 인도의 유명한 학승인 나선(나가세나) 스님에 의해서라고 하는데, 이후 모종의 이유로 스리랑카로 옮겨지게 된다. 11세기에 들어 버마를 최초로 통일한 빠간(Pagan) 왕조의 아누룻(1044-1077)왕이 상좌부 불교로 개종을 하면서 스리랑카에 에메랄드 불상을 요청하였다는데, 배에 싣고 오던 중 표류하면서 캄보디아의 수중으로 넘어갔다가 캄펭펫(이곳에도 왓프라깨오라는 사원이 있다)을 거쳐 최종적으로 치앙라이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도의 나선스님이 불상의 제작자로 등장하며, 이 불상을 손에 넣기 위해 버마, 란나타이, 라오스, 태국 등 당대의 각국 영웅들이 펼치는 노력이 전설 또는 기록으로 남아 이 특별한 불상의 위상을 강화시켰고, 궁극적으로 국가의 팔라디움(수호신)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2천 년에 걸쳐 인도-스리랑카-캄보디아-캄펭펫-치앙라이-람팡-치앙마이-루앙프라방-브엉찬-톤부리-방콕이라는 긴 여정을 보내고 이제는 태국의 수도 방콕의 심장부에 좌정한 에메랄드 불상은 태국이 인도차이나에서 차지하는 위상의 상징으로서 태국민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정체성의 기반이며, 그를 찾아 오는 수많은 순례자들에게는 영적 수호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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