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건축유산 순례- "란나타이" 개황

특별취재팀 | 기사입력 2015/01/31 [19:03]

태국 건축유산 순례- "란나타이" 개황

특별취재팀 | 입력 : 2015/01/31 [19:03]

란나타이(Lanna Thai)는 20세기 초 태국에 완전히 합병될 때까지 약 600여 년간 태국 북부지역에 실존했던 왕국이며 정치적 연합체의 성격을 갖는다. 치앙마이, 람푼, 람팡, 프래, 난, 파야오, 치앙라이, 치앙센 등이 여기에 속하며 치앙마이가 그 중심이었다.
 
란나타이는 13세기에 ‘멩라이’(Mengrai. 재위 1259-1317)라고 칭하는 인물에 의해 수립되었다. 멩라이는 치앙센 부근 언양(Ngoen Yang) 출신의 왕으로서 용맹한 야심가였다. 즉위 후 그는 연합-전쟁-개척의 수단을 적절히 섞어 적극적인 영토확장을 도모하게 되는데, 1262년도에 자기 이름을 딴 치앙라이(Chiang Rai)를 건설하여 수도를 이전하였고, 1281년에는 남부의 몬족 국가 하리푼차이(오늘날의 람푼)를 정복하고, 1296년에는 치앙마이와 람팡 및 파야오를 그의 영토에 포함시키는데 성공했다.
 
멩라이왕은 단순한 정복자만은 아니고 협상가이기도 해서 이웃국가인 수코타이의 람캄행 대왕과도 교분이 깊었으며, 후에 란나타이의 수도가 되는 치앙마이를 건설할 때 그를 초청해서 자문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란나타이는 국가 수립 후 약 200년 만인 1558년에 버마에 의해 정복당하면서 독립성을 상실하게 된다. 15세기 초 아유타야가 중부 태국의 유일한 강대국으로 등장한 이후 아유타야-버마간 경쟁과 충돌이 불가피해졌고, 1558년에 란나 점령을 통해 전초기지를 확보한 버마군은 마침내 1569년경 아유타야를 함락시킨다. 란나타이는 1578년부터 버마인들에 의한 직접 통치가 시작됨으로써 버마의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16세기 말경 아유타야는 ‘나레수안’이라고 하는 영웅이 버마를 몰아내고 국권을 되찾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란나타이는 버마와 아유타야 사이에서 약 200년 동안 양국간 세력다툼의 볼모가 되었다. 란나타이의 이 같은 운명은 18세기 후반 아유타야가 버마에 의해 완전히 멸망한 이후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1767년에 아유타야가 멸망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유타야의 남은 세력들이 버마를 태국으로부터 완전히 몰아내고 새로운 왕조(톤부리 이후 차크리)를 수립하였다. 이 시기에 버마와 갈등을 빗던 란나 지역의 통치자들이 버마로부터 등을 돌려 태국과 힘을 합쳐 버마를 몰아내는데 성공하고 태국으로부터 정치적인 자치권을 부여 받게 된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버마와 라오스가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면서 태국은 란나를 지키고자 부단히 노력하였으며, 1939년 마지막 통치왕자가 죽자 중앙정부에서 주지사를 파견함으로써 마침내 란나는 태국으로 완전히 편입되었다.
 
태국의 한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북부 태국은 ‘란나’라는 명칭으로 중부 태국과는 많이 다른 어떤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인정받고 있다. ‘란나문화’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우선, 란나는 백만개를 의미하는 ‘란’과 논을 의미하는 ‘나’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란나는 백만 개의 논을 의미한다. 이웃국가인 라오스는 과거 ‘란창(란쌍)’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백만 마리의 코끼리를 의미하는 말이다.
 
‘란나’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명칭 그대로 비옥한 농토가 곳곳에 펼쳐져 있는데 겹겹의 산(소수민족의 요람이기도 하다)과 다양한 강으로 이루어진 자연환경적 조건으로 인해 많은 수의 도시국가를 양산했고 오랜 동안 독자적인 문화를 보존해 올 수 있었다. 20세기 초 이 지역에 방콕으로부터 연장된 철도가 놓임으로써 비로소 중부 태국과의 통합이 가능해진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초 란나 지역에 먼저 거주하고 있던 민족은 몬(Mon)족들이었다. 몬족은 한 때 태국 땅 전역을 지배했던 민족인데, 이들이 태국 땅에 구축한 정치적 연합체를 ‘다와라와디(Dvaravati)’라고 부른다. 약 11세기경부터 크메르족의 지배 확대 및 타이족의 남진으로 태국 땅에서의 이들의 세력은 점차 사라져 갔다.
 
란나타이가 강대국으로써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수준 높은 문화를 지닌 몬족들의 국가를 정복한 것이다. 현존하는 란나 문화유산 중 초기 문화유산의 상당수가 바로 이들이 직접 남겨 놓거나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초기의 란나는 몬족의 영향 이외에도 이웃국가였던 수코타이와 버마의 영향을 받아들이면서 점차 고유성을 발전시키게 되는데 이 시기가 15세기 중엽부터 16세기 초까지이다. 이 때 탄생한 것이 높은 기단, 뚜렷한 몰딩, 작은 유골봉안실(탑에서 종처럼 생긴 부분)을 그 특징으로 하는 란나 특유의 제디탑이다.
 
버마에 의해 정복된 16세기 중엽부터 18세기 말까지 약 200년간 란나문화는 정체기를 맞았으나, 버마로부터 벗어나 재건이 시작된 19세기 이후부터는 새로운 중흥기를 맞는다. 새로운 정치적 구심점인 중부 태국으로부터의 문화유입은 물론, 티크나무를 중심으로 한 목재무역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외래문화도 빠른 속도로 유입되었다. 이같이 다양한 외래문화가 지역 고유의 전통문화에 스며듦으로써 ‘란나’문화는 더욱 독특한 색채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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