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건축유산 순례- 치앙마이의 기원

특별취재팀 | 기사입력 2015/01/31 [19:05]

태국 건축유산 순례- 치앙마이의 기원

특별취재팀 | 입력 : 2015/01/31 [19:05]

태국의 수도 방콕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70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치앙마이는 1296년도에 란나타이 왕국의 수도로서 탄생한 이후 이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태국에 편입된 오늘날에도 태국 북부지방의 최대 도시로서 과거의 영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700년 이상을 한 국가의 수도로서 또 한 지역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해 오고 있는 ‘치앙마이’의 성립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하자.
 
치앙마이는 란나타이를 건국한 멩라이왕에 의해 치앙라이, 위엥쿰캄에 이어 건설된 “새로운(마이) 도읍(치앙)”이다. 당시 새로운 수도 후보지를 찾고 있던 멩라이왕은 이곳에 이르러 사슴들이 늑대들을 물리치는 모습과, 작은 쥐들이 큰 쥐를 따라 보리수 나무의 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이 광경을 보고 좋은 징조라고 판단한 왕은 이 땅에 새 수도를 짓기로 결정했다고 전해지는데 이 이야기가 바로 치앙마이의 정도설화이다.
 
치앙마이는 서쪽으로는 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강이 흐른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입지를 가지고 있다. 이 같은 도시배치는 수코타이와 동일하며, 조선시대의 한양이 북악산과 한강 사이에 위치하고 있던 것과도 같다. 산과 강이 놓인 방향만이 틀릴 뿐이다. 우리나라 옛 도시의 성립이 풍수적 고려에 따른 것처럼 치앙마이 또한 심오한 종교적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치앙마이의 서쪽으로 마치 병풍처럼 우뚝 서서 도시를 지켜 주고 있는 산은 도이수텝(1601미터)-도이뿌이(1685미터) 산이다. 이 산들은 치앙마이의 수호신들인 ‘뿌새(Pu Sae)’와 ‘야새(Ya Sae)’의 거주처이다. 이 산들은 치앙마이의 성립 때부터 신성시되어 오던 산으로서 우리나라의 풍수지리로 치면 주산(主山)에 해당한다. 이 산이 없었다면 아마도 치앙마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태양은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서쪽은 죽음과 관련을 갖는다. 불교에서 서쪽은 아미타불이 거주하는 곳으로서 불교도의 내세를 의미한다. 태국의 경우 서쪽은 전통적으로 성스러운 곳으로서 세속적인 것과 철저히 구분되어야 할 장소로 인식되었다. 수코타이의 예에서 보듯이 도성의 서쪽에 위치한 산과 숲(Aranyk:아라닉)은 명상과 고행을 실천하는 승려들의 신성한 수도처였던 것이다.
 
수코타이와 마찬가지로 치앙마이도 주산인 도이수텝산과 그 자락에 위치한 서쪽 숲은 아라닉으로서 선승들의 요람이었다. 실제로 치앙마이의 왕은 수코타이의 고승을 초대하여 이 지역에 머무르게 했으며, ‘왓우몽’, ‘왓파댕’ 등 이 지역에 위치한 대부분의 사원이 치앙마이 선불교의 탄생지가 되었다.
 
자, 이제 속세의 중심인 치앙마이 성을 살펴보자. 치앙마이 성곽의 길이는 가로 2킬로미터, 세로 1.8킬로미터로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모습으로서 각 변은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다. 치앙마이는 여러 면에서 수코타이의 도시구조와 유사한데 성곽의 형태도 수코타이와 같은 정방형에 가까운 모습이다. 각 변 성곽의 중간쯤에는 문이 나 있는데,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동쪽 문은 ‘쁘라뚜 타패(Pratu Tha Phae)’라고 한다.
 
성곽의 외부는 제법 큰 규모의 해자가 성을 감싸고 있다. 해자를 만들기 위해 파낸 흙은 성벽을 조성하는데 사용하였다. 성곽의 네 모서리는 요새가 조성되어 있다. 13세기말인 처음 성곽축조 당시에는 없었으나 18세기 초 당시 치앙마이의 통치자였던 카윌라에 의해 신축되었다고 한다. 버마의 재침공으로부터 치앙마이를 보호하기 위해 기존의 방어벽을 강화한 조치이다. 지금은 부분적으로 복원된 요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치앙마이에 도읍을 정한 다음 해인 1297년도에 멩라잉왕이 치앙마이 최초의 불교사원을 지었다. “왓치앙만(Wat Chiang Man)”이라는 이름의 사원이다. ‘축성된 도시의 사원(Monastery of a fortified city)’이라고 번역되는 이 사원은 치앙마이 성의 북쪽 구역에 지금까지도 현존하며, 아름다운 제디탑으로 명성이 높다. 이 사원은 왕궁 옆에 지은 사원으로서 방콕의 에메랄드 사원처럼 왕실 전용사원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치앙마이도 태국의 다른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도시의 기둥 “락므엉”이 도시의 중심에 서있다. 태국의 도시건축 전통에서 도시(므엉)의 배꼽(사두)에 락므엉을 세운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치앙마이에서 도시의 배꼽은 지금은 부분적인 흔적만이 남아 있는 ‘왓사두므엉(Wat Sadu Muang)’이라는 사찰터였을 것이다.
 
치앙마이성 정 중앙위치에 일부 제디탑 만이 남아 있는 ‘왓사두므엉’은 그 명칭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야말로 ‘도시의 배꼽사원’으로서 실제로 도시의 기둥인 ‘락므엉’이 세워져 있던 곳이며, 아마도 치앙마이 건립과 관련해서 멩라이왕이 좋은 징조라고 여겼던 그 광경들이 벌어졌던 장소였을 것이다. 당초 이곳에 모셔져 있던 락므엉은 18세기 치앙마이 통치자인 카윌라에 의해 도심에서 약간 남쪽으로 위치한 ‘왓제디루앙’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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