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건축유산 순례- 치앙마이 "왓쩻욧"

특별취재팀 | 기사입력 2015/01/31 [19:12]

태국 건축유산 순례- 치앙마이 "왓쩻욧"

특별취재팀 | 입력 : 2015/01/31 [19:12]

‘왓쩻욧(Wat Chet Yot)’은 치앙마이 구시가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사원이다. 이 사원의 본래 명칭은 ‘왓 포타람 마하 위한(Wat Pottaram Maha Viharn)’으로서 ‘성스러운 보리수나무와 위대한 불당이 있는 사원’으로 해석된다. ‘왓쩻욧’이란 명칭은 일반인들이 간략히 부르는 말로써 ‘일곱개의 첨탑이 있는 사원’이라는 뜻인데 이 사원에 있는 ‘위한 마하포’라는 불당이 일곱 개의 첨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사원은 란나타이의 제 9대왕인 틸로카랏왕(재위 1441-1485) 때 건설되었다. 불교탄생 2000년을 앞두고 1455년에 사원을 창건한 것이라고 하며, 이때 스리랑카에서 가지고 온 보리수나무의 씨앗을 심었다고 한다. 1477년에는 상좌부 불교의 팔리어 경전 개정을 위한 국제불교회의를 이곳에서 개최하였다고 한다. 경전 개정작업은 약 1년간 지속되었으며, 승려를 대표한 ‘프라탐틴 마하테라’라는 승려와 평신도를 대표한 틸로카랏왕이 공동 의장을 맡았다고 한다.
 
남쪽에 있는 입구를 통해 사원 안으로 들어가면 경내의 중앙쯤에서 지붕에 일곱 개의 탑을 올린 매우 독특한 건물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이 사원의 중심건물인 ‘위한 마하포’ 불당이다. 건물은 붉은 홍토를 쌓아 만들었으며, 건물의 동쪽에는 아치형 입구가 있어 출입할 수 있으며 안에는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건물의 외벽에는 천사상이 부조되어 있는데 앉거나 서있는 자세로 양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현재 남아있는 사료에 따르면 틸로카랏왕이 인도에 사람들을 보내 보디가야의 ‘마하보디 대탑’을 모방하여 이 불당을 짓도록 했다고 한다. 혹자는 버마의 빠간(Pagan)에 있는 마하보디탑을 모방한 것이라고도 한다. 빠간의 탑도 인도의 탑을 모방한 것이니 어쨌든 이 불당의 원형은 인도의 ‘마하보디 대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00% 복제품은 아니며, 란나 고유의 예술기법을 이용하여 새로운 창조물로 승화시켰다.
 
이 ‘위한 마하포’ 불당의 바깥벽을 장식하고 있는 천사상은 모두 70인이다. 천사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고귀한 모습으로 치장을 하고 있으므로 틸로카랏왕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벽토(Stucco, 스투코)를 사용한 부조기법은 매우 사실주의적인데, 수백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부조는 란나타이 왕국의 문화적 수준을 잘 나타내 주는 빼어난 걸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사원의 한쪽에는 꽤 큰 보리수나무가 커다란 그늘을 만들고 있다. 이 나무의 조상은 스리랑카에서 왔다. 사료에 따르면 틸로카랏왕 통치 당시 스리랑카로 순례를 갔던 승려들이 보리수나무의 씨앗을 가지고 왔으며, 왕이 이 사원에 심도록 했다고 한다. 보리수나무는 당초 ‘위한 마하포’ 불당 안에 심어져 천정을 통해 밖으로 나와 있었으나, 약 100년 전인 1910년에 건물보호를 위해 뽑아내고 현재의 위치에 다시 심었다고 한다.
 
이 사원은 ‘태국의 보디가야’라고 할 수 있다. 인도 보디가야의 마하보디 탑을 모방한 건물이 있고, 스리랑카로부터 가지고 온 성스러운 보리수 나무가 있다. 사원의 이름도 이 두 가지를 의미하는 ‘왓 포타람 마하 위한(Wat Pottaram Maha Viharn)’인 것이다. 따라서 이 사원은 승려들에겐 석가모니 붓다가 그랬듯 보리수 밑에서 용맹정진할 수 있는 도량이 되며, 일반 불도들에겐 보디가야의 의미를 체험할 수 있는 순례지이다.
 
이 사원을 지은 틸로카랏왕은 란나타이 왕국의 최고 전성기를 이끈 만든 왕이다. 그는 수많은 정복전쟁을 벌여 란나타이의 강역을 확대하였으며, 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란나문화’를 크게 꽃피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매우 굴곡 많은 인생을 산 인물이다. 그는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로부터 정권을 빼앗아 왕이 되었다. 취약한 정통성 때문에 그 역시 수많은 도전을 받아야 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심지어 그의 외아들인 세자를 죽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아들을 모두 비극으로 몰아넣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업보 때문인가? 그의 사후에 란나타이 왕국의 권력승계가 매우 불안정해지면서 국력은 급속히 쇠퇴하고 만다.
 
틸로카랏이 자신의 아버지와 아들의 죽음을 부를 정도로 처절히 지켰던 란나타이 왕국의 왕좌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 ‘왓쩻욧’사원에는 그의 종교적 열망을 읽을 수 있는 흔적이 남아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유골을 이곳에 봉안한 것은 이상향 보디가야에 머무르고 싶은 그의 열망 때문이다. 또한, 불당 외벽에 천사상으로 조각되어 있는 그의 모습은 부처의 해탈에 동참하고 싶은 열망을 나타낸 것이다.
 
그의 모습이 조각된 천사상은 남국의 뜨거운 태양과 때론 습한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된 채 점차 깨지고 부스러지고 있다. 그런데, 윤회의 사슬을 끊고자 하는 틸로카랏의 뜨거운 열망 때문이었을까? 부스러진 천사상에서는 여전히 살아 숨쉬는 듯 온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시간은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티끌로 만든다. 아쉽게도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날들이 우리에겐 별로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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