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건축유산 순례- 수코타이 왓 마하탓

특별취재팀 | 기사입력 2015/01/31 [18:10]

태국 건축유산 순례- 수코타이 왓 마하탓

특별취재팀 | 입력 : 2015/01/31 [18:10]

수코타이(1238년-1438년)는 크메르 지배자들을 물리치고 타이민족이 세운 최초의 왕국이며, 방콕으로부터 북쪽으로 4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므엉 수코타이를 기반으로 약 200년간 존립하였다. 타이문자, 걷는 불상, 연꽃봉오리 제디 등 문화, 예술분야에서 타이족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한 나라로 평가 받는다. 수코타이의 “왓 마하탓”은 수코타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원으로서, 므엉 수코타이(수코타이 고대도시)의 가장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본래“왓 마하탓(Wat Maha That)”이란 명칭은“위대한 유물을 봉안한 사원(Temple with great relic)”이라는 뜻으로서 통상 석가모니 붓다의 유물을 봉안한 불교사원을 지칭한다. 불교국가인 태국에는 부처님의 유물을 봉안한 사원이 주요 도시마다 하나씩 있는데, 롭부리, 아유타야, 방콕의 “왓 마하탓”이 바로 그 예이다.
 
수코타이의 왓 마하탓은 초대 왕인 인드라딧 왕 때부터 건축을 시작하여, 람캉행 대왕과 로에타이 왕 때 크게 확대하였으며, 수코타이가 아유타야에 합병될 때까지도 건축은 계속되었다. 수코타이의 왓 마하탓은 가로 206미터, 세로 200미터의 벽돌담장과 외호(해자. Moat)로 둘러싸여 있는 형태이다. 벽돌담장은 우주의 경계를 의미하며, 외호는 우주의 바다를 상징한다. 벽돌담장과 외호가 쳐놓은 경계 안에 198개의 제디(탑. 스투파)와 10개의 대웅전(비한. Viharn), 그리고 다양한 다른 건축물이 존재한다.
 
수코타이의 왓마하탓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은 사원의 중심부에 위치한 연꽃봉오리(lotus bud) 모양의 제디(탑. 스투파)로 수코타이 건축의 가장 독특한 요소이다. 람캉행 대왕 시절인 1292년도에 처음 짓고, 이후 로에타이 왕이 스리랑카로부터 가져 온 석가모니 붓다의 머리카락과 목뼈를 봉안하기 위해 다시 건축했다고 전해 진다.
 
연꽃봉오리 모양의 제디(탑. 스투파)의 네 코너에는 실론-스리비자야 풍의 벽돌 탑이 설치되어 있고, 각 코너 사이 중간 지점에는 홍토로 만든 크메르 스타일의 쁘랑 탑이 놓여 있다. 각각의 쁘랑 탑 박공에는 석가모니 붓다의 일생(탄생, 깨달음, 첫 번째 설교, 열반)이 조각되어 있다.
 
중앙 제디탑의 기단부에는 합장을 한 채로 걸어가는 승려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탑 주위를 도는 의식을 묘사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이를 “쁘라딱시나(Prataksina)”라고 칭하며, 우리 불교의 탑돌이 의식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코타이의 왓마하탓은 가장 중요한 종교적 성지임과동시에 정치적인 권력이 분출되는 핵이기도 했다. 크메르의 전통에서처럼 정치권력의 합법성과 효력은 종교적인 장소와의 상징적 결합을 통해 얻어 지는 것이었다. 일례로 중앙 제디탑의 플랫폼은 람캉행 대왕 시절 소속 도시국가들의 영주들로부터 충성서약을 받던 장소로 쓰여지기도 했던 것이다. 왓 마하탓에서 수코타이 특유의 연꽃봉오리 모양의 제디를 중심에 위치시키고 그 주위에 스리랑카 제디, 크메르 쁘랑, 몬 제디 등을 설치함으로써 사원의 종교적 신격을 극대화시키면서 동시에 수코타이 왕국의 정치적 권위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아무리 강한 권력조차도 시간에 의해 정복되지 않는 것은 없었다.  한때 수코타이 왕국의 중심지였던 왓마하탓도 검버섯 같은 시간의 색깔이 점차 짙어지며 천천히 스러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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