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건축유산 순례- 롭부리의 프라쁘랑삼욧

특별취재팀 | 기사입력 2015/01/31 [18:09]

태국 건축유산 순례- 롭부리의 프라쁘랑삼욧

특별취재팀 | 입력 : 2015/01/31 [18:09]

방콕에서 북쪽으로 약 1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롭부리는 전략적 입지상 오래 전부터 역사에 등장하는 고도이며, 11세기 수리야바르만 1세(1001-1050)에 의해 앙코르에 편입되었다. 그 후 몇 차례 독립시도가 있었지만 무산되고, 앙코르제국의 자야바르만 7세(1181-1220)가 왕자를 롭부리의 통치자로 보내 태국의 중앙평원지대를 통제하도록 했었다. 롭부리는 오랫동안 앙코르제국의 지역 통제센터였기 때문에 태국에 남아 있는 크메르 예술형식을 롭부리 스타일로 명명할 정도로 중요한 곳이다. 앙코르제국이 쇠퇴한 이후에도 아유타야와 수코타이가 등장하기 전까지 상당기간 동안 롭부리는 중앙평원지대의 중심지였다.
 
프라쁘랑삼욧(Phra Prang Samyot)은 롭부리(암포므엉) 시내에서도 중심지에 위치한다. 프라쁘랑삼욧은 “세 개의 성스러운 탑”이라는 뜻으로서 크메르 스타일의 원뿔 형 탑두(塔頭) 세 개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높은 기단 위에 당당한 모습으로 서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 줄로 늘어서 있는 세 개의 탑은 중간 버팀벽에 의해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통로가 측면에서 관통하고 있다. 거대한 세 개의 돌탑이 횡대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으로서, 한국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마치 세 개의 산봉우리가 연결된 삼봉탑(三峰塔) 이라 부를 수 있을까?
 
프라쁘랑삼욧은 대부분 사암과 홍토로 만들어져 있으며 벽돌도 일부 사용되고 있다. 앙코르의 바욘(Bayon) 스타일을 보여주며 건축 시기는 12-13세기인 것으로 보인다. 당초에는 힌두신전으로 만들어졌다가 자야바르만 7세 때 대승불교 성전으로 용도가 바뀐 것으로 추측된다. 앙코르에 새겨진 글에 의하면 1191년에 자야바르만 7세가 불상을 23개 만들어 그 중 두 개는 수코타이와 피마이로 가져가고 하나는 롭부리에 설치했다고 했는데 그곳이 아마도 프라쁘랑삼욧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탑의 형태는 피마이 성전의 탑만큼 곡선적인 모습은 아니다. 또, 다른 앙코르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석조부조가 이곳 프라쁘랑삼욧에서는 찾기 힘들며, 벽면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다. 정교한 장식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석조부조 대신 치장벽토인 스투코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중 일부 장식문양은 크메르양식이 아닌 몬족의 양식으로 밝혀졌다. 이로 보건대 프라쁘랑삼욧의 건축에는 어떤 형태로든 현지 장인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중앙에 위치한 탑의 전면에는 동쪽을 향하고 있는  비한(Viharn. 대웅전)이 있다. 아유타야 왕국의 나라이대왕 시절에 건설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비한은 벽돌로 지어졌으며 건물의 상당부분이 무너져 내린 상태이다. 그 안에는 사암으로 조각된 불상이 있는데 14-15세기의 아유타야 양식을 보여 준다.
 
팽창을 거듭하던 앙코르제국은 자야바르만 7세의 서거 이후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와해되기 시작했다. 앙코르의 위대한 왕 자야바르만 7세의 사원으로서 한때 앙코르의 영화를 웅변하던 이 건물에는 이제 원숭이들이 새 주인이 되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프라쁘랑삼욧은 1926년에 개보수를 실시하였고, 1936년에 태국 예술부에 의해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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