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석<돌아온 콩트IN고야?>-건조기

04/20 건조기

최병석 | 기사입력 2024/04/20 [01:01]

최병석<돌아온 콩트IN고야?>-건조기

04/20 건조기

최병석 | 입력 : 2024/04/20 [01:01]

 돌이씨는 요즘 <아내와함께 24시간>을 실행중이다.

결혼 후 날마다 회사와 집을 오가며 그렇게 생활해 왔었는데 이제는 당분간 회사라는 글자를

뇌리에서 지워버려야 한다.

아내가 출산을 했고 육아를 위해 <휴직계>란 걸 냈기 때문이다.

바빴던 회사생활이 졸지에 집안생활로 바뀌어 버리니 포커스를 어디에 어떻게 맞춰야 좋을지

모르겠는 돌이씨다.

이제 막 출산을 마친 아내는 아픈 몸을 추스리느라 쩔쩔맨다.

세상의 빛이 아직 낯선 꼬맹이는 귀여운 엄살을 떠느라 앵앵댄다.집안은 이런 움직임에

부수적으로 따라 다니는 흔적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춤을 추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기운없는 아내가 힘을 내고 회복할 수 있도록 삼시세끼를 책임져야만 한다.

게다가 회사생활에 젖어있던 몸뚱아리를 건져 내서  집안생활에 서서히 담궈내야만 한다.

정신이 없는 돌이씨다.

수시로 쏟아져 나오는 빨랫감을 세탁기에 돌려 가뿐하게 건조기에다 말려내는 작업이 다반사였다.회사에서 어지간한 사무기기나 기계의 작동은 무리없이 소화해내던 돌이씨였지만

집안생활에서의 기계 활용도는 거의 무지에 가까운 돌이씨.

세탁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작동조차 어렵다.그냥 물만 투입하고 스타트버튼만 누르면 될 일이 아니었다.세탁물에 따라 찬 물을 넣어야  될 지 더운 물을 넣어야 될 지가 정해졌고

세제는 또 얼마나 넣어야 하는 지,섬유 유연제를 언제 넣어줘야

하는 지도 몰랐다.결국 돌이씨는 시작버튼을 누르기 전에 반드시 출산회복이 진행중인 아내의

진두지휘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집안 일은 그저 평온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 일의 규모나

횟수면에서 무시못할 정도의 것이었다.

그리고 나름 정해진 아내 만의 룰이 있는 터라 대충 해치우고 말려는 돌이씨의 행위는 아내의 비위(?)를 건드리기 일쑤였다.

돌이씨는 허둥지둥이다.회사에서는 그래도 어느정도 신입의 티를 벗은지 제법 되었는데

집안살림에서는 아직 신입이다.

누워있는 아내의 진두지휘가 있어야 움직임이 부드러워진다.

사실 멀쩡한 건 돌이씨 밖에 없는 셈이다.아내와 아기는 아프지만 회복이라는 희망 속에 있다.

돌이씨는 그 희망을 돕기위해 회사에서 집안으로 급하게 날아온 것이다.

돌이씨도 이제 제법 집안살림에서 적당한 루틴을 갖춰가고는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바탕 미역국과 씨름을 한 후에 아내를 도와 아기의 안녕을 살피고 밤을

새운 흔적들을 지운다.

천천히 쌓여있는 빨랫감을 지워나가면서 청소란 걸 해낸다.

그렇게 오전이란 시간이 흐를즈음 돌이씨는 아내와 아가가 잠이 들었음을 확인한 연휴에 잠시

PC를 켜서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보고 겜돌이로 변신한다.물론 그 짜릿한 시간은 오래 갈 수가 없는 노릇이지만 그나마 집안살림을 위해 발벗고 나선 시간들 중에 갑오브 갑의 시간인 것이다.

이제 다시 아내의 홀쪽해진 영양상태를 채워줘야 아가도 흡족해질 수가 있다.

밑반찬과 미역국을 잘 차려서 아내앞에 대령했다.

아내는 이제 모든 것의 수발을 들어줘야만 하는 상태를 벗어났다.

아주 살짝 아프기는 하지만 혼자서 일어날 수도 있고 심지어 걸어서 이 방 저 방을 다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돌이씨의 도움이 쌩판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닌지라 힘쓰는 도우미로서의 남편의 위치.

아침에 거둬들인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어놨더니 아내가 시동을 걸어 빨래가 리드미컬한

반복운동에 들어갔다.

한참후에 아내가 돌이씨를 불렀다.

"자갸! 빨래 다 해놨으니까 건조기좀 돌려줘"

겜돌이로 변신한 돌이씨에게 아내가 부탁했다."또 지난 번처럼 하라는 것만 달랑 하지말고 잘

살펴서 돌려줘"

이게 무슨 말인가?아마도 지난번의 그 사건을 얘기 하는 것 같았다.

건조기를 돌려 달라길래 무턱대고 버튼만 눌렀다가 한바탕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빠져 있는 필터를 보지 못한 채 버튼만 눌러댄 통에 건조된 빨래는 온통 실부스러기들이 달라

붙어있었던 거다.결국 빨래를 다시 해야만 했고 돌이씨의 자존심에 스크레치가 크게 나 버렸었다.

이번에는 잘 해보겠다는 돌이씨는 진행하던 게임을 잠시 접고 세탁실로 향했다.

돌이씨네 건조기는 고가의 유명제품이 아닌지라 별도의 열이 빠져 나갈 배기호스가 따로 있었다.

돌이씨는 확인했다.안에서 대기중인 배기호스를 창문 밖으로 잘 조절해서 내놨고 문제의 필터도 잘 안착된것 같고 전원도 콘센트에 잘 끼워져 있다.돌이씨는 이번이야말로 완벽하게

상처난 자존심을 일으켜 세울 수있다고 자신하며 건조기의 버튼을 눌러 작동을 개시했다.

건조기 돌아가는 소리가 힘차게 들려온다.자 이제 되었다.

돌이씨는 서둘러 멈추었던 겜돌이의 직분을 수행하기위해 방으로 돌아왔다.그리고는 건조기의 일을 다했다는 알람소리.

돌이씨는 서서히 게임을 접고 건조된 빨래를 수습하기 위해 일어섰다.세탁실에 들어선 돌이씨는 건조기의 문을 열어 보고 얼음땡처럼 굳어져 버렸다..

 

돌이씨가 세탁기의 세탁물을 건조기에 옮기지도 않은 채 건조기를 돌려댔던 것이다.아내가 당연히 세탁물을 건조기에 넣어놓고 자기에게 부탁했을 것이라는 오판,즉 선입견과 편견이라는 두마리의 개가 짖는 걸 그대로 방관한 결과였다

돌이씨의 자존심은 이제 일어설 기력조차 없이 끝모를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 건조기 작동법을 이번기회에...



콩트집'콩트IN고야'저자(도서출판 신정,2021,10/15초판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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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시집'먹보들'저자(도서출판 신정,2022,8/15초판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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