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연씨는 요즘 죽을맛이다.

들려오는 소식들이 죄다 우울하다.

이러다 세상 종말이 눈 앞에 펼쳐질 것같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쟁을 그칠 생각이 없는듯하고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향한 포탄

발사에서 이란쪽으로 포신을 돌려 확전까지 도모하자는 분위기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초강력지진이 일어나 주변을 긴장시키더니 후지산의 화산폭발까지

예고하고 나선다.

미국은 지금 북극한파로 꽁꽁 얼었다.

엊그제는 신장 위그르지역에 진도7.2이상의 강진이 일어났다.

저 멀리 벌어지는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크고 안타까운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우리들의 바로 눈 앞에서는 북한의 김정은이 금방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것만

같다.

그리고 정작 소연씨는 몇 달째 백수인 채로 궁핍하고 또 궁핍하다.

자고 일어나면 손을 벌리며 대기하고 있는 각종 청구서들을 순서대로 처리해주다 보면 진이

빠져 버린다.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실업급여로는 청구서들의 위력을 잠재울 수가 없다.택도 없는 일이다.

소연씨가 분연히 일어섰다.

도저히 그냥 이대로만 있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늘상 집에서 뒹굴뒹굴하다가 널린 잠을 줄일 겸 새벽 인력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아직 날이 채 밝기도 전인데 남아있는 힘을 보탤테니 날 어디론가 데려가 달라는 사정이

승합차의 미닫이 문에 실렸다.

하소연씨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소연씨가 승합차에 몸을 싣을수 있게 되었다.

이른 새벽에 승합차에 올라 타게된 일꾼들은 어둠이 걷히면서 하나 둘 빠져나가고 이제

소연씨만 남겨졌다.

소연씨는 신축아파트의 도배보조자로 변신하였다.

능숙한 기술자의 지시에 따라 도배지를 나르고 자르고 풀칠을 하고 다시 나르고 또 나르고...

그러다가 하루가 다 갔다.

피곤했지만 집에서 뒹글대는 것보다 훨 좋았다.

일을 지시하고 일당을 챙겨주던 사장님께서 소연씨가 성실하다고 느끼셨는지 내일도 함께 하자고 넌지시 운을 띄운다.

소연씨는 감격했다."넵 감사함돠,열심히 하겠슴돠"

그렇게 보름을 일했다.

일당이 짭짤했다.

그렇게 일을 하다보니 우울했던 일들이 까맣게 지워져 안 보이게 되었고 죽을 맛보다 허기짐을 해결하기 위하여 살 맛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청구서의 위력에서 해방이 되었다.

소연씨에게 여유가 생겼다.

갑자기 한반도에도 북극한파가 몰아쳤다.

여유로워진 소연씨가 평소에 사고 싶었던 다소 고가의 패딩점퍼를 구입하기로 하였다.

입고 싶었지만 하도 비싸서 엄두도 못 내었던 그 점퍼를 마침내 사고야 말았다.

소연씨의 기분이 좋아졌다.우쭐해졌다.

모두들 소연씨의 새점퍼만 쳐다보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전철역을 벗어나려고 출구에서 카드를 찍고 있는 소연씨에게 웬 청년이 다가섰다.

"이 패딩  너무너무 탐 나는데 어디서 사신거예요?"

소연씨가 신이 났다.

소연씨는 입에 거품을 물어가며 자세히 디테일한 설명을 착실하게 나열해주었다.

심지어 인터넷에 나와있는 후기댓글까지 찾아봐 주며 입고 있는 패딩점퍼의 장점을 설파하였다.

그런데 그 청년이 웬지 싸하다.

열심히 듣고 있을 줄 알았던 그 청년이 태도가 바뀌었다.

"저 이제 그건 되었구요,혹시 도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까요?"

소연씨가 물었던 거품을 거두고야 말았다.

'도? 도라니? 증말 돌아버리겠네...흐미'

▲ 이런 패딩점퍼 너무 이쁘죠?  © 최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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